그는 꽤나 정적인 사람이다. 전투에 임하거나 무술의 수련을 할 때를 제외하면 그는 고여 있는 물과 같이 고요했고, 명상을 하거나 능숙한 솜씨로 자수를 놓을 때 특히 그러했다. 그의 그런 행동은 재단 사람들에게 동양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는 데에 일조하고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화려한 모란꽃을 수놓고 있었다. 흰 천 위에 붉은빛이 선명한 꽃잎이 만개했고, 새파란 잎사귀가 그 주위를 휘감고 있다. 사물의 선정에 별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날따라 반짇고리 한구석의 붉은 색 실이 눈에 띄었을 뿐. 그리고 문득, 모란의 흐드러지는 자태에서 옛 제자가 떠올라 남자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다행인지- 그가 감상에 빠지기 직전, 그의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아왔다. 자신의 손으로 피워낸 모란을 내려다보고 있던 티엔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침착하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얼음물이 담긴 유리잔. 부쩍 더워진 날씨 덕에 잔의 표면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안 놀라네요.”
“그걸 바랐다면 기척이라도 숨기고 다가왔어야 하지 않나.”
작게 웃으며 불평을 말하는 측은 마틴 챌피. 그걸 받아치는 쪽은 같은 재단 소속의 티엔 정이다. 마틴은 고개를 허리를 굽히고 천 위에 피어난 꽃을 내려다보았다.
“꽤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신작인가요?”
유리잔 안에는 얼음 외에도 얇게 썬 레몬 슬라이스가 들어있었다. 티엔은 그것을 자수틀과 함께 실과 반짇고리가 놓여있는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렇게까지 칭할 물건은 아니다만.”
직전에 떠올렸던 옛 제자에 관한 생각에 티엔은 자수에 관한 언급이 그리 마음 편치 않았다. 이제는 언급조차 피하고 있는 그 일을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그는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정도 수작업이면 내놓을 만하죠.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어요?”
마틴이 그의 대답을 듣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티엔은 이 독심술사가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엿들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이유 탓에 마틴은 꽤 오랜 시간 그를 멀리해왔었고, 놀랍게도 그들이 서로와 가까워지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던 날 티엔은 상대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그는 사실과 ‘답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 사이에서 잠시간 망설였다.
“유쾌하지 못한 예전 일이 떠올랐다.”
“그런가요. 별일이네요, 티엔 당신은 앞만 보고 사는 줄 알았는데.”
“당신이 묻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고 있었겠지.”
시큰둥한 대답에 마틴은 이 기공사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궁금해졌으나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는 색색의 실패를 정리하는 티엔의 곁에 자리 잡고서 남자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할 말이 있는 게 아니었나?”
“음-”
마틴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 이곳을 들린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도 잠깐 휴식을 가지고 싶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의문이 섞인 물음에 마틴은 좀 더 그럴싸한 대답을 짜맞춰보았다.
“꽤 낭만적이잖아요? 아무 용건 없이도 얼굴을 본다는 건.”
태연한 미소에 티엔은 알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얼음물 잔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 티엔이 수를 놓던 천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가.”
정적인 시간이 흐른다. 대화는 적었고, 아직 남아있는 휴식 시간 동안 티엔은 자투리 천 위에 새롭게 자수를 놓았다. 때때로 손을 멈추고 곁에 자리한 청년을 바라보던 그의 손끝에는 옅은 금빛의 꽃들이 수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