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은 그의 발치를 굴러다니는 고깃덩어리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몇 시간 전까지는 웃는 법을 알았고, 몇 십 분 전까지는 비명을 지를 법을 알았던 인간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장면은 몇 번을 보아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설령 그 숨을 앗아간 것이 잭 자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차갑게 가라앉았는지, 혹은 열에 들떴는지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던 마음을 다잡으며 그는 사람이었던 그것에게 '정리하고' '다듬을' 부분이 있는가를 꼼꼼히 살폈다. 물론 그의 작업은 이미 완벽했다. 한 명의 사람을 한 자루의 날붙이로 갈아낸 이들조차 지금의 광경을 본다면 구역질을 참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금속의 냄새로 가득한 방을 빠져나오는 잭에게서 흐느끼듯 긴 웃음이 흘러나왔다.
길었던 여정에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은 결코 그와 그녀들의 이름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진실을 보지 못할 것이다.
“자네는 명예롭게 눈 감게 될 걸세.”
그가 아직 '잭'이 아니던 시절, 그 한 마디는 그가 들어 본 가장 엄숙하고도 우스운 말이었다.
능력자로서 정부가 편성한 교육 커리큘럼의 수료를 마친 그는 그가 능력자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대개 샌드위치와 사과 한 알, 낮 시간 동안은 자신과 같은 능력자 아이들을 지도했으며 저녁이 되면 가벼운 산책과 정원 손질을 즐겼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그는 평탄한 삶의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정말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랬던 그가 옛 스승과 그 동료들에게 불려가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가 아직 독신이었기 때문일지도, 혹은 어릴 적에 유독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는 지독히도 운이 나쁜 인간이었다.
“여왕께서 내리신 비밀스러운 임무야.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시작은 달콤한 사탕발림이었다. 어차피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온갖 좋은 말로 그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의미 없는 문장들은 어째서 이런 짓을 해야 하냐고, 내보내 달라며 부르짖는 남자를 구원하지 못했다.
타인의 살을 찢고 가를 때마다 잭은 발가벗겨져 조각나고 다시 꿰맞춰 진 자기 내면의 무언가를 연상했다. 그건 양심이었나? 아니면 인격 그 자체? 처음으로 그런 상상을 했던 날부터 많은 것이 수월해졌다. 잭은 그가 받은 만큼을 돌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대상은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좋았다. 그가 고통을 쏟아낸 자리에는 파괴밖에 남지 않았고 세상은 그런 그의 흔적을 혐오하며 두려워했다.
“이봐, 칼잡이. 돌아갈 시간이다.”
좁은 골목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잭은 선명하게 떠오르는 불쾌한 기억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으나 깨어난 곳은 여전히 역겨움으로 가득했다. 잭 자신에게서 감도는 피 냄새와 주변의 악취, 그리고 위선자들의 존재 그 자체.
자신을 향하는 사무적인 눈빛을 멍하니 바라보던 잭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밤의 거리에 섬뜩하게 파고드는 발작적인 웃음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밤늦은 시간에 살인마를 관리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요원은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 이런 미치광이와 엮이는 건 아무리 일이라도 껄끄럽다며 그는 종종 잭의 면전에서 투덜거리곤 했다.
그러나 잭은 웃음을 멈추고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모습은 마치 기괴한 짐승처럼 보였다.
“이 자식이.”
“아, 또 발작이라도 하나 보죠.”
키가 더 작은 쪽의 요원은 진압봉을 빼 드는 상관을 가볍게 말렸다. 그는 잭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안고 있다. 그리고 괜한 소동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걸 수습할 사람은 그 본인이 될 게 뻔한 상황이었다.
“어이! 여기서 꾸물거려서 좋을 거 없다고……”
관리대상의 상태를 살피고자 다가간 남자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순간 무너지는 듯 보였던 잭의 인영은 어느새 그의 품을 파고들었고, 복부에 가해진 둔한 고통은 곧 믿기 힘들 만큼 날카롭게 남자의 정신을 난도질했다.
“아아……. 분부대로, 나으리들.”
귓가의 낮은 음성은 외마디 비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능력을 쓰려던 시도는 이어진 공격으로 무산되고 만다. 처음은 신장, 그다음은 폐 부근을 당했다. 요원의 말끔하던 양복에는 질척거리던 액체와 피거품이 스며들었다.
부하의 이상을 깨달은 상관이 반응했을 때 남자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대로 대상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어떤 문책이 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중년의 요원은 많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이 잭에게로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강력한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잭은 그의 예상과 달리 등을 돌려 도주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살인마는 추격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렸고, 괴로워하는 남자를 거칠게 붙잡아 세우곤 자신을 덮치려는 이를 향해 발로 차버렸다. 알아듣기 힘든 비명과 함께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삶에 대한 절박과 고통, 그리고 당혹감.
잭은 당황한 요원의 짧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몸을 어떻게 가장 고통스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잘 훈련된 능력자였으나 방심은 화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잭은 늘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보였지만 지금껏 명령을 위반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세간의 인식과 달리 그들에게 잭은 약자를 사냥할 뿐인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명령 외의 난도질을 수행하고 있던 잭은 이상을 감지하고 현장에 도착한 지원 병력에 의해 간단히 제압당했다.
“어때, 이것도 명예로운 죽음인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광기로 번뜩이는 눈이 가려지고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현장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인간성을 잃은 괴물은 또다시 철창에 갇혀 끝을 기다렸다. 조롱과 비난의 가운데서, 그는 마지막까지 단 한 번의 저항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