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장르인 언라이트의 레어스토리 풍 끄적끄적. 짧습니다 끊깁니다....
언라이트는 짧은 글이 몇 개씩 이어지고 다른 캐릭터 스토리와도 연계되는 그런 게 참 좋았어요.
전화벨 소리가 깨질 것 같은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왔다.
강제적으로 깨어난 내 머리는 활동을 시작한 그 즉시 주변의 환경을 내게 알려온다. 푹신한 감촉은 분명 침대 위였고, 약간 까슬한 이불의 재질은 이곳이 내게 낯선 곳임을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지하연합의 주먹에게서 인터뷰를 따내려 했을 때만큼 심한 숙취 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러나 전날 술을 마셨던 기억은 없다. 어쩌면 그 날보다도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고,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길게 울리다 끊어졌던 벨소리는 내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려던 그 때 다시 이어졌다. 어지간히도 급한 용건인 것 같았다.
「여보세요.」
두어 번 목을 다듬었음에도 내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있었다. 어젯밤에 대체 뭘 했던 걸까.
「겨우 받는구나. 클리브 이 자식, 너 대체 어디야?!」
수화기 너머의 발신자는 대니였다. 내 친구들 중에선 꽤나 침착한 편에 속하는 대니의 말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기억나지 않는 시간 중에 사고라도 쳤던 건가,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덜컥 불안해졌다. 한턱 내겠다고 해놓고는 술값이라도 떼먹고 도망쳤던 걸까?
「그게…… 어느 여관 같은데. 지금 막 깨서 잘 모르겠어.」
「하? 무슨 태평한 소리냐? 경찰이 했던 말은 사실이야? 정말 네가 그런 짓을 저질렀어?!」
경찰. 기자인 내게는 꽤 친숙한 사람들이지만 친구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는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런 짓이라니, 내가 뭘 했다는 건데?」
여러 가지를 묻고 싶은 건 내 쪽이다. 하지만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두통을 무시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반문을 던졌다.
「그건…….」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던 직전과 달리 대니의 목소리에 망설임이 서렸다. 나는 초조했지만 대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살인. 그들은 네가 세 사람을 죽인 살해한 용의자라고 했어.」
「뭐?」
「그런 게 아니지, 클리브? 경찰이 뭔가 잘못 안 거지? 네가 좀 나쁜 놈이긴 해도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나는 더 이상 대니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듣자마자 허름한 방 안을 필사적으로 둘러보던 내 눈이 무언가에게로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온몸의 근육통과 여전한 두통마저도 잊고 말았다.
「클리브?」
「어, 어. 당연히 아니지! 이봐 대니, 어떻게 날 의심할 수가 있어? 네가 아는 클리브 스테플이 그런 사람이었어?」
「역시 그런 거지?」
대니는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것 같았고 나는 이 대화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됐다.
「그 경관이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그래도 네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
「역시 너밖에 없다니까. 뭘 잘못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에는 내가 해명할게! 오해는 빨리 풀고 싶으니까 지금 당장. 너는 마음 놓고 환자들 먼저 보고 있으라고. 아, 혹시 트집을 잡힐지도 모르니까 이번 통화 얘기는 그 사람들한테 하지 말아줘.」
괜한 말을 덧붙여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 알았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나는 널 믿으니까.」
「물론. 고마워, 대니.」
통화를 마친 나는 망연자실하게 커튼이 드리운 창문을 바라보았다.
대니와 연락을 나눈 단말은 직업상 은밀한 내통에 쓰이고 있는 쪽이었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지인은 대니 뿐이니 경찰은 아직 나를 추적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눈길을 방 안으로 돌리자 그곳에는─ 침대 곁의 낡은 서랍장 위에 검붉은 얼룩으로 뒤덮인 셔츠가 걸쳐져 있었다.
방 안은 조금 어둡지만 다양한 사건을 취재해온 내가 저 선명한 빛깔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그것은 분명 무언가의 혈흔이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섬유에 스며든 것이 아닌 빠른 속도로 옷 위에 흩뿌려진 흔적.
「대체 뭘 한 거냐, 어제의 나……?」
아무리 떠올려 봐도 어제의 기억은 귀가 도중에 끊겨 있었다. 술 약속이 있었던 것도, 우연히 반가운 얼굴을 만났던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게 붙잡힌다면 나는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고 만다.
설령 만취했더라도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나는 먼저 나의 무죄를 증명할 단서를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나는 진실을 찾는 데에 능숙하다. 운이 좋다면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바로 끝낼 수 있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려 노력하며 어제까지는 빛 바랜 흰 색이었던 셔츠에 손을 가져다 댔다.
「메트리.」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습관적인 한 마디와 함께, 나는 어젯밤 이 천조각이 목격한 사건을 머릿속에 재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