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일 오후, 마틴의 일터 가까이에서 우연히 마주친-과연 우연일까?-두 사람은 짧은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다른 후원자에게 자리를 맡긴 재단의 인재는 작게 마련된 휴식 공간에서 손수 끓인 홍차와 작은 비스킷을 내왔다.
릭은 평소 차보다는 커피를 더 즐기는 회사원이지만 마틴의 홍차라면 언제든 환영이라며, 때로는 여행 도중 눈에 띄는 차를 선물로 들고 올 때도 있었다. 지금 그들 앞에 놓인 차도 그 선물 중 하나로, 마틴은 그것의 은은한 사과 향이 마음에 든다고 평했다.
서로의 근황 등을 물으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던 도중 릭은 마틴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독일의 뮌헨 지방에 며칠 동안 작은 축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안타깝지만 목요일까지는 약속도 잡혀 있고... 최근엔 자선행사 준비로 조금 바쁘거든요."
시간 절약에 있어 릭의 능력은 분명 편리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시간을 짜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심으로 유감스러운 얼굴을 보이는 마틴에게 릭은 도리어 미안해지고 말았다. 막 바쁜 시기가 끝난 릭의 회사와 달리 재단의 일정은 여전히 숨차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말디, 혹시 겉을 바삭하게 튀긴 닭을 먹어 본 적 있소? 영국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릭은 어색한 사과 대신, 문득 떠오른 어떤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틴은 여행자가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매번 즐겁게 듣곤 했는데, 어릴 적부터 위대한 탐험가 그랑플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이 청년은 여전히 바다 너머의 세상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다. 릭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이는 마틴을 보며 작게 웃었다.
튀긴 감자와 닭을 연결시켜 떠올리는 마틴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였다. 여행자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로 마음먹고, 그가 지금껏 먹어 왔던 튀긴 닭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음, 다른 곳에도 있지만 나는 내 고향에서 처음으로 먹어 보았지. 닭을 통째로 튀기는 게 아니라 먼저 먹기 좋은 크기로 조각 내고... 아, 여기엔 어린 닭이 좋다오. 특히 봄 닭이 제 맛이지! 그걸 우유에 재워 뒀다가, 소금과 후추, 그리고 파프리카 같은 걸 섞은 밀가루를 묻혀 뜨거운 기름에 빠르게 익히는 거요."
사실 그게 정확한 조리법이 맞는지는 릭 자신도 확신이 없다. 어쨌거나, 그는 지금 세계 요리 전집을 펴내려는 게 아니었으니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너무 빠르거나 늦게 건져서는 안 돼. 그렇게 딱 알맞게 튀긴 닭다리을 베어 물면- 짭짤한 튀김옷이 입 안에서 부서지고, 촉촉한 살코기가 가득하게 씹히겠지! 특히 그 안의 육즙이 어찌나 감미로운지. 아, 레몬즙을 좀 곁들이는 것도 별미라오. 으깬 감자나 코울슬로도 함께 말이야."
별다른 과장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릭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음식의 맛에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건 곁에서 설명을 듣고 있던 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런, 너무하시네요- 점심도 별로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배가 고픈걸요. 아직 저녁까진 한참 남았는데 말이에요."
"하하, 내가 좀 들떴나? 음, 물론 굉장히 맛있기도 하지만. 만일 그대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군. 이건 축제 때가 아니라도 괜찮을 텐데."
머쓱하게 웃음짓던 릭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의 기대하는 눈빛을 마틴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말에 시간이 되느냐고요?"
둥글게 휜 눈이 릭을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음을 읽은 걸까? 아니면 이 미국인이 너무 뻔하게 굴고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릭은 어느 쪽이라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나쁘지 않겠네요. 음, 저번처럼 새벽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면야."
"알겠소, 그때는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니까?"
승낙의 말에 릭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같은 사람과의 또 다른 추억. 그가 새롭게 찾은 즐거움은 언제나 그를 설레게 만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