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에 의한 관통상을 처치하는 동안 릭은 꽤나 속 편한 소리를 뱉었다. 일그러지는 표정이나 떨리는 손까지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모양이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협적인 강화인간, 다시 열린 인식의 문, 괴멸했다고 알려진 안타리우스의 재부흥.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대는…… 그러니까 홀든 가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지, 그렇지 않소?”
그러나 릭의 어투는 평온한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낮게 가라앉아 있다. 돌아가야 할 일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에게 이런 식의 대화는 현실 감각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
벨져는 짧은 대답과 함께 붕대의 대용인 셔츠 조각을 단단히 눌러 묶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는 다시 주변의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종교집단의 잔당은 모두 물러간 것으로 보이나 부상자까지 있는 상황에선 더욱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지금 릭은 적의 기습으로 부상을 입어 능력을 쓰는 것을 힘겨워 하고 있었다. 벨져는 그런 상황에서 퇴각하는 적까지 쫓으려 들던 그를 막았고, 다행히도 상처는 중요한 근육이나 혈관을 건드리지 않은 듯 했다.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전투의 문외한 치고 운이 좋았다고 할까. 하지만 벨져는 홀로 그 시바 포를 쫓던 그의 행동을 만용이라 보았다.
물론 벨져는 처음부터 루사노로 이동하는 것 외에 릭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동행을 요구한 이상 그는 벨져가 책임져야 할 짐이었고, 그의 부상은 자신의 불찰과 같았다.
“릭.”
부름에 고개를 드는 남자는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네 힘이 필요할 거다.”
“아.”
그의 피로감 위로 쓴웃음이 번졌으나 벨져는 아직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네게서 눈을 떼지 않을 테니.”
“……고, 고맙소.”
지금 상황에서 부탁을 하는 건 벨져 측이었음에도 릭은 얼떨결에 감사의 말을 내뱉었다. 이 귀족 출신 검사에게는 태도의 일관성으로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능력을 쓰는데 문제는 없겠나? 좌표를 하나 알려줄 테니 기억해 두도록.”
“아픈 건 여전하지만 어떻게든. 이번에는 어떤 곳이지?”
벌써부터 부려먹는 건가- 라며 릭은 속으로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곧 밝혀지기로 다음 여행지에 용건을 가진 사람은 벨져가 아니었다.
“쓸만한 치유능력자가 있지. 그 정도 부상에 완치는 문제 없을 거다.”
그 말을 마친 벨져가 주변을 살피던 눈길을 다시 공간능력자에게로 돌렸을 때, 그 미국인은 뜻밖에도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물론 아픔은 별로 가시지 않은 기색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니, 뭐라고 할까. 이 일도 그리 나쁘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의혹에 찬 시선과 마주친 릭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로군.”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의 감상이다.
릭은 미처 다 짓지 못했던 쓴웃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평소보다 더욱 신중히 벨져가 지목한 장소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