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터우터의 자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틴은 그가 오기 전부터 관련된 일을 다수 처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업무상의 이유로 그들이 자주 마주치게 되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마틴으로서는 속이 끓는 일이었지만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남에게 미루지 않았다.
재단의 이방인인 티엔에게 자신의 일을 맡겨두기는 찜찜했고, 또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할 파악한 필요가 있었다. 능력이 통하지 않더라도 관찰이라는 수단은 여전히 유효할 터였다.
그런 와중 티엔 측에서는 오히려 그를 나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대개 그렇듯 마틴이 잘생긴 얼굴을 가졌다거나, 그 생김새에 어울릴 만큼의 고운 말을 쓸 줄 안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티엔은 처음에 마틴의 생김새조차 흐릿하게 기억했으며 그들은 인상적일 만큼의 긴 대화를 나눌 일이 거의 없었다.
티엔의 눈에는 그의 외견이나 성격보다도 서류를 처음 읽는 사람도 알기 쉽도록 정리된 메모, 손이 두 번 가지 않는 깔끔한 일처리 같은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함께 일을 한다면 이런 사람이 이상적일 거라는, 그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마틴을 향했지만 물론 마틴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라면 마틴은 그에게 말을 많이 걸지 않았다. 티엔은 안녕하세요, 에 이어지는 안부 인사나 날씨가 좋다는 둥의 사족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깔끔한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이어지는 마틴의 화법은 그에게 썩 달가운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이 점은 그 마인드리더가 티엔을 껄끄럽게 생각한 탓이었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거 알아요? 당신의 뒷얘기를 옮기는 후원자가 있다는 거.”
별다른 특별한 일이 있던 날이 아니었다. 그날에 관해 티엔의 기억에 남아있는 건 바로 이 대화뿐일 정도였다.
뜻밖의 이야기였지만 그가 듣기에 마틴의 말에 걱정의 기색은 없었다. 사실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마틴은 여전히 티엔을 좋게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많지만. 단순히 출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요. 유감으로 생각해요. 제게 대놓고 하는 소리는 아니어서 손을 쓰기는 어렵군요.”
“중국에서는 그런 걸 ‘閑話’라고 하지. 쓸데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티엔은 그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직접적으로 받은 불이익은 없었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면 그들도 무어라 할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가짐에 나쁠 것은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걸 전하는 티엔의 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말을 전했던 마틴도 그의 짤막한 대답에는 굳은 얼굴이 되었다.
“글쎄요. 당신은 고립되는 게 두렵지 않나 보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 받는다거나.”
“그럴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닌가.”
“완벽하다는 건 모든 상황을 대비한다는 것 아닌가요? 완벽이라는 게 당신의 목표라고 들었는데요.”
“완벽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른가 보군.”
마틴은 불편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의 대화는 어쩐지 티엔의 기억에 남아 오랫동안 이어졌다. 마지막의, 완벽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후략)
더 작은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고운 입술에서 반짝이는 금화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날 재단 건물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티엔의 제자가 아직 영어로 된 대화에 서투르던 시절.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빨리 배우기 마련이지만 친절한 마틴 챌피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자 했다.
소년과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도 그에게 읽어줄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고민하던 마틴은 동화책을 빌려왔다. 처음에는 무슨 애 취급이냐며 가볍게 성을 내던 하랑은 어느새 조선에는 없던 사악한 용이며, 마녀, 왕자와 공주 따위의 이야기를 꽤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이제는 그것도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꽤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그들의 수업을 언뜻 엿들은 티엔은 생각했다. 아마 그날의 그 생각이 바로 티엔이 자각한 첫 호감이었을 것이다.
마틴은 여러 지표를 번갈아 보며 재단의 재정상황을 걱정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 제때 팔리지 않은 물건들을 손해를 봐가며 빠르게 자금으로 바꾸어야 할지. 혹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물건의 가치를 지켜야 할지.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새로운 물건을 들여오는 데엔 위험이 따르고, 가끔은 재단이 그리 좋은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있었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지금은 그런 작은 실수들이 모여 꽤나 뼈아픈 결과로 돌아오곤 한다.
“어쩌면 돈을 만들어내는 능력자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화폐 가치에 타격이 가겠군.”
탄식을 내뱉었던 마틴은 그의 화를 부추기는 목소리의 방향으로 눈을 흘겼다. 그러나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 티엔에게 그의 감정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데이트란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각자의 일을 하고, 그 사이에 끼워지는 드문 대화는 그들의 사이가 멀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그 반대의 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