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4시간 45분. 오차범위는 약 20분. 누군가에게는 끝나지 않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 ‘종’의 멸종에는 지나치게 짧았던 시간.
우리는 그 날 이후의 현재에 아직도 살아가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그렇게 하려던 게 아니야. 날 용서해줘요,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그만……”
공포에 질려 부릅뜬 눈은 허공을 응시했다. 터져 나온 비통한 울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그런 도중에도 그의 입술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끔찍한 것들. 너흴 죽이고 말 거야…… 죽이고 죽여서 결국 그렇게…… 아픈 건 싫어. 그래서 그곳에서 널 찢어 버릴게……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저 망할 자식들은 아무것도 몰라. 잊어버렸어. 어쩌지? 또 맞게 될 거야. 엄마. 나를 두고 가지 말아요……”
가슴팍을 쥐어뜯을 듯이 할퀴는 손이며 머리가 받아들인 것들을 고스란히 뱉어 내는 혀에는 그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지 않았다. 격양된 감정으로 가빠진 숨소리는 그가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서도 낮게 이어졌다.
흐느끼던 남자는 울음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곤 자신의 숨을 포기해버렸다. 떨리는 몸을 가릴 수는 없지만 또다시 이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그에게 있어 지금의 비참한 삶 속에서도 가장 견딜 수 없는 일부분이었다.
헐떡이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산소를 갈구하는 머리의 외침이 절박한 이명이 되어 그가 듣는 소리들을 가린다. 유독 머릿속을 파고드는 부정적인 소리들은 그를 깎아내리고 그의 머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런 소리들을 지울 수 있다면- 그는 지금 당장 숨이 끊어진다 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몸은 정직하게 생존을 추구한다. 의지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시점이 오자,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기도가 갑작스럽게 밀려든 공기에 고통을 호소했다. 기침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다시 맑아지는 그의 정신 속으로 끔찍한 잡음들이 각자 섞여들 틈을 찾고 있었다. 현실이라는 악몽에서 깨어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마틴.”
설핏 들려온 문소리의 너머로, 그 증오스러운 목소리는 위태로운 정적 속에서 유난히도 또렷하게 울렸다. 기침 소리, 혹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머그잔이 낸 둔탁한 소리가 원치 않는 간병인을 불러오고 만 것이다. 마틴은 그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설령 그럴 수 있었다고 해도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원치 않는 광범위 마인드리딩으로 괴로워하는 마틴을 몸을 낮춰 감싸 안았다. 그것은 그가 아는 유일한 치료법이자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
“……괜찮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말에는 머뭇거림이 있다. 타인을 위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의 어설픈 흉내. 그 스스로도 자신을 말을 믿지 못하는 흔적이 남아있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야.”
그럼에도 마틴은 마음 한구석에서 위안을 느꼈다. 아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인지, 혹은 실제로 능력 간의 상쇄작용 따위가 있는지. 사실 후자의 가능성은 매우 희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은, 무너진 마음에 얼마나 위험한가를 스스로를 통해 재확인하고 있었다.
고개를 자신의 양팔에 파묻고 있는 마틴은 감촉을 통해 자신을 감싸 안은 것은 흰 문양의 왼팔뿐, 칠흑색의 오른팔은 그대로 늘어뜨린 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대체 누구를 위로하려 든단 말인가.
시끄럽게 울리던 소리들이 조금은 잦아든 기분이 들었다. 가빴던 숨이 약간의 헐떡거림이 되고서야 마틴은 입을 열었다.
“티엔, 당신은……”
나약함을 지우려는 무던한 노력에도 그는 자신이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였다는 것을 깨닫곤 말을 삼켰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의 어느 것 하나 그가 바라는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그 하나하나가 마틴에게 굴욕이었고 또 고통이었다.
“……가요. 부탁이에요.”
마틴은 애써 평정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전까지 도움을 받았던 사람의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단호했으나 티엔은 순순히 그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이제 괜찮아요.”
그 말이 완전히 사실일 수 없음을 티엔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자는 그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알 수 있었기에 이 이상 그에게 관여할 수 없었다.
‘당신은.’
‘왜 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왜 날 이렇게 비참하게 살게 만든 거예요?’
팔이 쑤셨다. 한때는 든든한 그의 일부였으나 지금은 차라리 잘라 내버리고 싶은 사지의 한 부분.
티엔은 검은 팔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웠다. 이변은 기공사가 연마해온 기의 흐름을 헝클어놓았고, 그는 살아남는 데 간신히 성공했으나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과연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팔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강건했던 그도 지금은 약 없이 밤을 버티기가 힘들다.
조금은 진정된 마틴을 뒤로 하고, 티엔은 바닥을 구르고 있던 머그잔을 주워 들고는 방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이변에서 각자 서로의 목숨을 구한 바가 있는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할퀴며 등을 기대고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티엔은 어지럽게 놓여있는 물건 사이에서 약병을 찾아냈다. 다시 일을 나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가 병을 집어 든 그때, 그 아래 놓여있던 꾸깃한 종잇조각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티엔은 눈살을 찌푸린다. 차마 버리지 못한 종이 위에는 어떤 연락처가 한 줄이 적혀있을 뿐이지만, 그것은 그에게 있어 불길함 그 자체였다.
“안녕하신가, 능력자 씨.”
그자는 티엔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도중 그를 불러 세웠다. 본래 거의 바닥나있는 그의 능력과 망가진 신체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자의 대다수가 사라진 지금은 그의 미약한 힘이나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었다.
“누구지?”
“특별히 의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더군.”
절박함은 없다. 오히려 약간의 빈정거림이 섞여 있다는 것을 티엔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찾는 일이야. 가능하면, 우리 앞으로 대령해줬으면 하는데. 정 어렵다면 시체라도 끌고 오면 되고.”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티엔은 이런 식의 의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 무례한 자는 예의 그 쪽지를 건넸다. 짤막한 연락처. 그리고 그 곁에 그려진, 천칭을 간략화한 상징.
“대가는, 그래. 당신들의 미래라고 해 두지.”
경악, 그리고 경계의 모습을 보이는 티엔에게 그는 태연히 자신의 용건을 늘어놓았다. 의뢰의 대상은 그들의 실험체라는 것. 또 그들이 어떤 보상을 줄 수 있는지를.
그들에게도 이변의 타격은 있었다. 그러나 연구의 성과는 남아있었고, 그들은 망가진 능력이나 신체를 완화할 수십 가지의 방법을 알았다. 설령 그게 끔찍한 실험의 결과라 할지라도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잘 생각해 보라고. 아니면, 이대로 죽어가거나.”
티엔은 그들에게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자신들의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조용한 곳.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마틴과 그의 상태 모두가 걸림돌이다. 게다가 지금 티엔에게는 충분한 돈이 필요했다. 있을 장소, 약, 안전,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위해서는 한가하게 있을 시간 따위가 없다.
남자는 시름없이 은신처를 나섰다. 이미 오후의 것으로 바뀐 햇볕이 따갑게 쏟아지고, 그의 망가진 팔에 약간의 온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그 미약한 평온을 미처 느낄 수 없었다. 뜻밖의 방문자. 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를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금발에, 아직은 옅은 주근깨. 햇빛 아래서 맑게 빛나는 호박색의 눈. 아직 작은 아이는 마틴 챌피와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