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게도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 하는 오만한 능력자. 그것이 바로 티엔이 본 마틴 챌피였다.
그들의 첫번째 만남은 브루스와 함께 어색한 시간으로 지나갔고 서로에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마틴은 낯선 동양인에게 경계심을 품었지만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티엔은 눈 앞의 마인드리더보다는 앞으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은 티엔의 생각을 읽으려던 마틴의 시도로 그들 모두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그 일 이후로 마틴은 티엔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고, 티엔은 마틴을 대할 때 묘하게 비꼬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사실 누구라도 마틴의 행동을 눈치챌 수만 있다면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머릿속을 침범 받길 원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티엔의 불쾌함 가운데에는 그가 깨닫지 못할 일종의 동족혐오가 섞여있었다.
티엔은 아마도 선천적인 능력자였지만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다. 혹은, 그의 무의식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의 노력은 누구보다 간절하고 치밀했기에 타인이 그의 특별함을 말할지라도 티엔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티엔을 부러워하는 이들 중 티엔 만큼의 노력을 실제로 행한 이는 없었다. 티엔은 그들의 말을 듣는 대신에 그들이 어째서 더 수련에 힘을 쏟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결국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른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타인의 경외나 질투, 혹은 충고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지금까지와 다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전의 자신이 그저 더 높은 경지를 원했다면, 타인과 다른 출발점을 가진 자신은 누구보다도 더 높은 경지를 찾아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스승이 그에게 말했던 ‘완벽’이라는 목표였고, 그의 검고 흰 손은 완벽을 움켜쥐고자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한 힘을 원하게 되었다.
그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다름에 대한 자각과 완벽을 위한 노력은 점차 그를 오만하게 만들었다. 그는 타인과 자신을 구분했고 타인에게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 완벽하지 못하며 심지어 완벽을 추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완벽하다 칭할 수 없는 스스로의 성과에 무감각한 만큼 그는 자신을 향한 찬사에도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악의 없는 오만함은 누군가에게는 매력으로,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인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편, 마틴은 그와 전혀 다른 의미의 오만을 가지고 있었다. 타인의 정신을 읽고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 마틴만큼 고요하면서도 강력한 능력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마틴은 능력자를 위한 단체인 그랑플람에서조차 위험한 능력이라 하여 거부당한 이력이 있었다.
하지만 마틴은 지금 그 강대한 능력을 공공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으며 지금껏 문제시되는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랑플람에 들어오고자 한 선택부터, 그는 의심과 경계를 받을지언정 타인에게 질타를 받은 일은 없었다.
타인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위치에 서 있으며, '낮은 곳'에 선 이들을 위해 기꺼이 가면을 쓰는 그가 마음 속 어딘가에 오만함을 감추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마틴은 자신의 오만을 깨닫고 있었고 그 마음이 자라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도를 넘은 우월감은 마틴이 지금껏 지켜온 무언가를 삽시간에 무너뜨릴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틴은 티엔과 달리 오만을 선의로 숨길 줄 알았기에, 그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마음을 읽으려는 마틴의 행동에서 티엔은 마틴이 실패를 겪은 적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능력이 저지당했을 때 마틴의 동요하는 모습은 그의 추론을 확신을 실어주었다.
그 알량한 능력을 믿고 나를 읽을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인가?
더 높은 곳을 추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이가, 능력만을 믿고서.
티엔이 굳이 마틴에게 면박을 준 데에는 그런 심술이 섞여있었다. 그는 마틴이 어떤 자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완벽할 리 없는 마틴이 능력에 대한 확신과 오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사실 티엔은 그 날의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동족혐오가 때때로 그로 하여금 마틴을 주시하게 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가 꺼낸 말이었다면 넘어갔을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거나 의견 차이에 반박을 가하는 일이 잦았고, 결과적으로 마틴에게 티엔은 그 누구보다도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다. 티엔 자신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그렇게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 마틴을 관찰한 결과, 티엔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마틴이 성실하며, 또 그와는 다른 방면에서 일종의 완벽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았다. 티엔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인간관계라는 가치를 마틴은 놀라운 방식으로 성립하고, 유지하며 유기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게다가 능력을 썼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마틴의 태도는 타인에게 호감이 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물론 티엔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그런 방면에 무딘 티엔의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틴의 수완은 대단했다.
무표정하게 서류를 넘기던 티엔의 미간이 좁혀졌다.
“여기 빠진 부분이 있군. 이 협상 건은 누가 맡았지?”
“아. 그건 챌피씨가 담당했을 거예요. 수정하라고 말해뒀었는데, 어휴.”
하랑과의 수련을 안배하기 위해 재단의 일정을 검토하던 티엔은 부주의한 후원자가 빠트린 서류의 빈 칸을 채워 넣었다. 회사와의 마찰을 완화하기 위한 형식적인 협상. 이번 협상에서 재단은 전보다 많은 조건을 내세웠지만, 이 정도의 일은 마틴이 나선다면 순조롭게 진행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마틴 챌피. 자신의 글자로 쓰여진 인명을 속으로 읊조려본 티엔의 입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티엔이 서류를 읽으며 일어날 법한 일은 아니었다. 아주 짧게 그 점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티엔은, 그 감정이 적절한 인선에 대한 만족감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마틴이 자신의 이런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겼다.
티엔과 마틴은 각자의 능력에 있어 오만했다. 그 미묘한 공통점은 그 둘 사이의 몇 안 되는 연결점이었고, 티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연결점 너머의 마틴에게 눈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둘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작은 감정일지라도, 티엔은 그로 인해 때때로 미소지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