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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마틴]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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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10. 23:32
만약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누구인가? -Erich Fromm
이 구절을 읽고.
여보세요.
브루스씨, 끊지 말아주세요. 제발……
저… 마음이 들리지 않아요.
엘리어트와 있을 때보다도 더 조용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전 이제 어쩌면 좋죠……?
“……그 편이 네겐 더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이상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워 통화를 잇지 못했다. 이게 브루스와 얼마만의 대화였을까, 마틴은 자신이 그에게서 어떤 반응을 기대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말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내려놓은 수화기를 차마 놓지 못하고 있던 마틴의 손이 떨렸다. 호흡이 가쁘다. 먼저 약속을 저버려 브루스를 실망시킨 것이 마틴이었음에도 뜻 모를 야속함에 감정이 흐트러져버렸다. 숨을 참아 호흡을 정돈하려 해보아도 소용이 없자 마틴은 체념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늦가을의 냉기에 바닥이 차가웠음에도 마틴은 개의치 않았다.
방이 어두웠지만 마틴은 불을 밝히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브루스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부정당했다는 사실이, 마틴에게는 자신을 부정당한 것만큼이나 아프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자신은 브루스가 어떻게 말해주길 바랐던 걸까. 어쩌면 어떤 말에도 위로 받을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런 전화를 걸었던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마틴이 최대한의 용기를 짜내 뻗었던 손은 그렇게 다시 움츠러들었다.
이상현상은 얼마 전부터 일어났다. 처음부터 마음이 전혀 읽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라면 평범한 말소리만큼 크게 들렸을 소리들이 어느새 속삭임으로 바뀌어 있었고, 마틴이 그 내용을 잡으려 애를 써봐도 생각들은 모래알처럼 흘러내렸다. 대화 도중 인상을 쓰고 집중하지 못하는 마틴을 보며 다른 이들은 그가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마틴은 그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 중에 눈치챌 수 없는 불쾌함이 섞인 건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소리는 점차 잦아들어 결국 침묵만이 남았다. 마틴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채 독자적으로 원인을 찾아 헤맸지만 능력자에 대한 연구도 이전의 사례들도 이렇다 할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불안이 중첩되는 사이 마틴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바라며 평정을 가장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눌 때조차 마틴은 대답을 주저하게 되었고, 얘기치 못한 상황에 쉽게 피로를 느꼈으며 그의 매력적인 화술 또한 능력 없이는 상대의 진심에 닿지 못하는 겉치레로만 느껴졌다. 마틴은 지금의 자신이 앞으로 주어진 일정을 해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마틴을 걱정하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는 어째서 좀 더 잘 해내지 못하느냐는 독촉과도 같이 들렸다.
사실 무엇보다 마틴을 좀먹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과거 능력을 약화시키는 능력자 엘리어트와 함께 하던 시기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마틴은 과분한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활했으며 기꺼이 ‘매력적인’ 자신에게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자신이 크게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능력을 사용했던 건 어디까지나 재단을 위해,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회사에 대항할 기반을 세워둔 지금이라면 이 능력이 사라져도 큰 타격은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랬을 터인데, 능력의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에는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능력으로 쌓아 올려진 존재라고, 적어도 마틴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호흡은 가라앉았지만 암울한 생각이 머리를 훑고 있었을 무렵, 마틴의 머리 위에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브루스씨? 아니면 내 능력에 기대려는 사람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마틴은 더 이상 그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들이 마틴을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다고 한다면, 자신은 그들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까? 이전과 달라진 마틴을 그들을 똑같이 대해줄 수 있을까? 마틴에게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마틴은 더 이상 그 벨 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집을 나선 마틴은 정처 없이 걷다가 최대한 시끄러운 주점을 찾아 구석에 앉아 되는대로 술을 시켰다. 주인이 무언가 말을 던졌던 것 같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마틴은 금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마틴은 처음 능력을 가졌을 때만큼의 소음에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마틴을 더욱 울적하게 할 뿐이었다.
“드디어 찾았군.”
흐린 시야 속에 손발의 감각이 기묘하게 느껴지고 유쾌함과 울분이 뒤섞이던 와중, 마틴은 하루 만에 흠뻑 취한다는 느낌과 술이 확 깬다는 느낌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인물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뭐… 뭐죠, 당신이 어떻게 여기? ……하?”
검은 머리, 쌀쌀한 지금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도복, 눈에 띄는 양 팔의 색. 주점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이 동양인은 마틴이 껄끄러워 마지 않는 티엔 정이었다.
“그런 연락을 남기고 사라지더니 꽤나 속 편히 보내고 있었나.”
술잔과 마틴을 번갈아 보던 티엔이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마틴은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그의 태도에 울컥했고, 브루스와의 통화가 새어나갔다는 점에서 분노를 느꼈다.
“아- 잘 알고 있네요. 유능하고 총애 받는 스카우터씨. 이젠 재단 모두가 알고 있나요? 남의 마음이나 엿듣던 마틴 챌피가 이젠 쓸모 없어졌다고?”
“브루스가 보냈다. 많이 걱정하더군.”
티엔은 살짝 표정을 찌푸렸지만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틴은 그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브루스씨가? 말도 안 돼. 제가 능력을 못 쓴다고 하니까 후련해하시던데요.”
그렇게 말하며 취한 사람 특유의 웃음과 함께 또 한 잔을 비우려던 마틴은 티엔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마틴이 신경질적으로 저항해보아도 하물며 취한 지금 티엔을 힘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당신의 집까지 찾아가고, 날 부를 일도 없었겠지.”
“……거짓말.”
“어쨌거나 그만 돌아가줬으면 좋겠군. 아니면 억지로라도 데려가겠다”
“지금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마틴이 티엔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순간, 몸을 지탱하던 팔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필요 이상으로 세차게 몸을 움직인데다 지금껏 이렇게까지 취해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의자가 넘어지고 술병이 구르는 소리에 인파의 시선이 둘에게 쏠렸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마틴을 가만히 지켜보던 티엔은 결심한 듯 그를 일으켜 세우곤 가뿐히 들쳐 업었다. 마틴은 그의 행동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그의 목에 매달리게 되었다. 둘의 키 차이가 적어 썩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제자놈보다도 귀찮게 하는군.”
“내려놔요!”
마틴이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저항해봤지만, 머리가 울리는 와중에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그의 등 위에서 몸부림을 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방금의 일로 마틴은 겨우 자신이 얼마나 취해있는지를 깨달았다.
“……제가 걸을 수 있어요.”
설득력이 없는 마틴의 말은 가볍게 묵살당했다. 티엔은 침착하게 대금을 치르곤 마틴을 등에 진 채로 거리에 나섰다. 쌀쌀한 바람이 취기에 열이 오른 마틴의 뺨을 스치자, 마틴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티엔은 그런 그를 흘끗 쳐다보곤 말없이 어두운 길을 걸었다.
“제가 능력을 잃은 건 알고 있는 거겠죠.”
마틴이 먼저 침묵을 깨고 티엔에게 물었다. 어색함보다는, 그에게 업힌 채로 잠들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 컸다.
“만일 제가 아니라 티엔 당신이었다면, 당신이 능력을 잃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나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폐를 끼치며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지는 않았겠지.”
“……당신은 그렇게 강해서 참 좋겠군요.”
“취한 게 확실하군.”
“…….”
마틴의 진지한 질문에 무심히 대답하는 그를 보며, 그의 딱딱한 등이 의외로 편안하지 않았다면 당장 내려가 한 대 치고 싶다고 마틴은 생각했다.
“절 어떻게 찾은 거죠?”
차라리 하랑이라면 몰라도 티엔에게 마틴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신을 찾아냈는지 마틴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브루스에게 들은 바로는, 옷가지나 짐에는 손대지 않았고, 많은 현금을 챙겨나간 것 같지도 않다더군. 그렇다면 멀리 가지는 못했겠지.”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마틴은 겨우 그 정도의 단서로 그가 있을 만한 장소를 뒤지고 다녔을 동양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니, 평소의 마틴이라면 술집에 들릴 일도 없었으니 가능한 모든 장소라고 해야 맞을지도 몰랐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에 대해 가늠하던 도중 마틴은 막 업혔을 때 티엔의 등에 땀이 서려 있던 것을 떠올랐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깨닫지 못했지만, 이런 날씨에 얇은 차림인 그에게는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얼마나 찾아다녔던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마틴은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차라리 멀리 떠나버리는 편이 나았겠다고 중얼거리자, 티엔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 탓인지 쌀쌀한 바람에도 취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틴은 평소라면 티엔에게 하지 않았을 말들을 건넸다. 한탄이나, 심지어는 티엔 본인에 대한 욕설까지, 티엔은 묵묵히 듣거나 질문에 대답하며 발을 옮겼다.
“능력은 제 일부였어요. 정말 커다란 일부인데…… 그걸 잃은 저는 대체 뭐가 되는 거죠?”
브루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마틴은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마틴은 지금껏 능력을 쓰면서도 그 사실이 의식되지 않도록 노력해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틴의 능력이 통하는, 그리고 마틴이 능력을 적지 않게 사용한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낄 상대에게는 결코 꺼내지 못할 질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마틴은 티엔에게서 질문의 해답을 구할 수는 없었다.
“질문할 상대를 잘못 찾았군. 그런 능력이 없어져봐야 내게는 똑같은 마틴 챌피니까.”
“그런가요……”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마틴은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묘한 안정감을 받았다. 티엔은 지금의 마틴이 더 나아졌다고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마틴에게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티엔의 무성의한 대답은 마틴에게 유일한 위로와도 같았다.
드문드문 길을 밝히는 가로등을 따라 티엔의 발이 멈춰선 곳은 마틴에게 낯선 건물 앞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어두운 탓인지 눈에 익은 장소는 보이지 않는다. 마틴은 의아함을 느끼며 티엔에게 이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내 숙소다. 이쪽이 더 가까웠으니까.”
대답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명료했다. 티엔이 어디를 간다 말한 적은 없었지만 마틴은 당연히 자신의 집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브루스와 대면할 거라 각오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도 없이……”
“또 멋대로 나돌아다니는 걸 찾아올 생각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 대답에 마틴은 말문이 막혔다. 혹시라도 마틴이 다시 사라지고 티엔이 그를 찾는 수고를 반복해야 한다면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붙잡혀 돌아오는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항의를 한다고 해서 이 자가 순순히 들어줄 리는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마틴은 티엔의 다리를 걷어찼을 뿐 별다른 토를 달지는 않았다.
현관문 앞에 다다르자 티엔은 드디어 마틴을 등에서 내려놓았다.
“알아서 걸을 수 있다고 했던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틴이 발을 땅에 딛자마자 잊고 있던 어지러움과 토기가 몰려왔다. 조금 전까지 멀쩡히 대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틴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괴로운 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말았고, 그런 그를 본 티엔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군, 하고 중얼거리며 문을 연 뒤 다시 그를 들어다 옮겼다.
마틴이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울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밖에선 티엔이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찾았소. ……2번가의…… …상당히 취해 있…… 자세한 사정은…… …아니, ….. ……본인의 말로는… ……이쪽에서 보호……. …………”
통화의 내용으로 짐작하기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브루스였다. 지금 당장 그와 만나거나 통화할 일이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마틴은 과연 자신에게 그를 볼 면목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브루스가 마틴을 걱정하는 것은 몰락한 배신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에 두통이 찾아와 마틴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있을 때, 머리맡의 전등이 켜지고 딱딱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어느새 통화를 마친 티엔이 들어와 김이 나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있었다. 시지만 씁쓸한 향은 별로 마틴의 구미를 돋우지 못했지만 의외의 배려에는 놀랐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티엔이 잠시 마틴의 상태를 가늠하듯 내려다 볼 때, 마틴도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들어 마틴은 그를 아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전부터 뿌연 안개와도 같아서, 마틴은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티엔.”
마틴은 시선을 떼고 돌아서려는 티엔을 불러 세웠다. 그에게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고 이 장소를 떠나면 다시 그에게 묻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신만은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줄 건가요?”
천천히 돌아서는 그와 눈을 맞추며, 마틴은 최대한 또렷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마틴의 표정 때문인지, 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인지 티엔은 바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망설이는 그의 눈에서 마틴은 흔들림을 읽었다. 그건 아마도 마틴이 정확히 무얼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당혹감,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감정에 대해 마틴은 확신을 내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기를 바랐다.
“생각해보지.”
티엔은 침묵의 시간에 비해 짧은 대답을 남기고 방을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침묵이 깔렸다. 그는 떠나는 발소리조차 남기지 않았기에 방 안에는 그 한 마디의 잔향과 차의 향만이 맴돌았다.
마틴이 손을 뻗어 찻잔을 가볍게 감싸 쥐자 따스한 온기가 그의 손을 간질였다.
그가 잃은 것을 보지 않는 이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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