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옅은 안개를 두른 초목이 맑은 기운을 내뿜고, 차가운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티엔은 이곳을 알고 있다. 그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수많은 발걸음이 다녀간 길을 찾아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산을 올랐다. 그 희미한 과거의 기억에 그립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 날은, 몇 번째의 거절이었던가. 문득 떠오른 의문을 머리에서 지워낸 그는 짧은 심호흡을 하곤 자신의 몸에 푸른 기를 둘렀다. 지금의 그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스승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첫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한계를 증명하고자 했다.
정 티엔, 무인이며 기를 다루는 기공사. 이 얕은 산을 오갔을 많은 발길 중 하나가 그의 목적을 이루어줄 수 있을지. 기대는 적었다. 남자는 단지 멈춰 설 수 없을 뿐이었다.
이내 작지 않은 규모의 도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직 그곳에서는 이렇다 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도장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티엔은 잠시 동향을 살핀 후 자신의 아침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고자 했다.
그가 도장의 문 앞으로 다가간 그 순간이었다. 티엔이 손을 대기도 전에 기름을 잘 먹인 문은 미끄러지듯 조용히 열렸고, 그 너머에는 한 초로의 남성이 티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평온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은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티엔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을 때 그는 손을 들어 기공사의 말을 제지했다. 뻔한 인사는 불필요하다. 노인은 그가 누구인가를 알았고, 티엔은 짐작으로 상대가 이 도장의 어떤 존재인가를 알았다. 찬찬히 티엔을 살핀 뒤에야 노인은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용건은 알고 있네. 허나 돌아가 주지 않겠나, 이 관에 자네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일세.”
이미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도장을 지나며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그였다. 그의 소문은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에까지 도달해있었다.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기척만으로 그의 도착을 알아챈 노인은 상당한 경지의 무인임이 틀림없었다.
“승패는 관계없소. 나는 배움을 청하기 위해 왔을 뿐이니.”
노인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배움이라, 그래. 말은 좋아! 자네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자네를 본 기억이 있네. 그때도 자네는 내 형님께 그리 말했었지……”
그 말에 티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의 모습을 뜯어보았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남자는 이렇다 할 기억을 떠올릴 수 없었다. 티엔에게 그는 스쳐지나가는 군중의 일부였으나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놀랍구만. 그때보다 더 흉흉해졌군, 자네의 기운은.”
일찍이 티엔의 기에 이런 수식이 붙은 적은 없었다. 기공사는 심기가 불편할 법도 한 그 말에 차분히 대답했다.
“내 수련이 모자라다는 뜻인가?”
“아니, 그 반대일세.”
그 물음에 껄껄 웃음을 터트린 노인의 얼굴에 씁쓸함이 서렸다. 티엔은 이해하지 못할, 이해해서는 안 될 감정이었다.
“모르겠는가? 자네 같이 힘을 타고난 강자가 우리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불길하게 보이는지 말일세……. 뛰어 넘을 수도, 그렇다고 모방할 수도 없지. 그래, 내 어찌나 어리석었는지.”
자신의 한계를 알기 위해 이곳을 찾은 티엔과 달리 이 노인은 아직 어렸던 티엔을 통해 그의 한계를 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내 지금은 웃으며 자네를 볼 수 있지만, 내 제자들이 벌써부터 꺾이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네. 그만 돌아가 주게나.”
단호한 거절이었다. 그러나 티엔은 지극히 그답게도 눈앞의 노인을 이해할 수 없다. 도달할 수 없는 강자를 바라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침범할 권리가 그에게 있을 수는 없었다. 노인은 자신의 체면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티엔은 그를 경멸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그 자리를 지키시오. 나는 나의 길을 갈 터이니.”
순순히 물러서는 티엔에게 노인은 복잡한 심경을 가졌다. 저 특별한 힘을 가진 젊은이는 그가 가진 자부심을 무참히 부쉈고, 또 앞으로도 누군가의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존재할 것이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건 분명 이 젊은이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곳에서의 목적을 잃은 채 수련을 위해 떠려나는 티엔에게, 노인은 거의 유일하게 그가 줄 수 있는 충고를 남겼다.
“무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나는 자네 이전에도 내 한계를 이미 보았다네. ……이 늙은 몸도 한때는 유망한 젊은이였지. 그럼에도 말일세.
내 감히 내다볼 수 없지만 자네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는 법일세.”
노인의 말에 티엔은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그는 아직 저 통탄이 섞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르다. 티엔은 한계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곳을 필요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