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풀었던 썰에 약간의 살을 붙여서.
짧습니다.
“벨져. 이제 그만 끝내는 게 어떻소?”
그들은 밤의 바다를 걷고 있었다. 벨져는 잠시 동안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가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를 향한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 벨져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바람이 그의 아름답게 빛나는 머리칼을 흐트러뜨렸고 비릿한 바다의 냄새는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파도와 가까운 모래사장은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있다. 그 위를 걷는 두 사람의 가벼운 발소리는 파도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무얼 말이지?”
벨져는 평소보다 나지막한 반문을 던졌다.
릭은 고심에 빠져있던 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벨져는 그 눈빛이 대화에 집중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미소가 없는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의 추측과 너무도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대와 내가 서로에게 연관된 것들. 사귄다거나 하는 것 말이오.”
벨져의 걸음이 멎었다.
조금 앞서서 걷고 있던 릭은 뒤늦게 발을 멈추고 뒤돌아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드문 일이다. 그들 중 앞서 나가고자 하던 건 언제나 벨져 쪽이었다.
공간능력자는 달빛에 의지해 찬찬히 검사의 표정을 살폈다. 벨져는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각할 수 없었지만 릭은 그런 그에게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그렇다고 인연을 완전히 끊겠다는 뜻은 아니야. 오해하게 했다면 미안하오.”
그는 예민한 고양이를 달래듯 아주 천천히 벨져에게로 다가갔다. 서로에게 손이 닿을 수 있을 거리에서, 그는 멈춰서 조금 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어렵지 않소. 생각보다 길어져 버렸어. 너무 길어졌지. 이대로 계속할 수 없다는 건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이대로 계속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벨져는 자신의 의문에 스스로 답했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이유의 숫자는 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유의미했다.
“그렇다면 이만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너는…… 그런 걸 바라는 건가?”
벨져의 물음을 릭은 명확히 긍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정 또한 없었다.
“나는 분명 낭만주의자일거요. 하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을 꿈꾸지는 않아.”
맑은 초록빛의 눈이 감겼다.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심호흡이 지나갔다.
“그대는 마치 격류와 같지. 나라는 공간이 얼마나 크다고 해도 그대를 담기에는 너무나 비좁을 테고. 그러니……”
평온하고도 진중한 얼굴. 벨져는 그게 무얼 뜻하는가를 알았다. 릭은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고 분명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인인 벨져는 그런 낌새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까득.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대화를 나누기 전, 벨져는 처음으로 어떤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곁에 있는 릭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한- 그런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