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동료인 마틴이 지나가듯 던진 말에 티엔은 감사보다도 먼저 의아함을 느꼈다. 오늘, 양력 4월 29일은 확실히 그가 태어난 날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자신도 신경 쓰지 않는 생일을 타인이 먼저 언급하는 건 별로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지?”
티엔은 딱 그 한 마디를 마치고서 곧장 자신의 업무로 돌아가려던 사람을 불러 세웠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마틴의 태도는 티엔이 그런 사담에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아. 생일 말이죠. 하랑이 말해줬어요. 아까 그 애가 후원품 정리를 도와줬거든요.”
“그런가.”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 또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본인이 말한 적 없는 생일을 그의 제자는 또 어떻게 알고 있었단 말인가?
“왜요, 당신 마음이라도 읽었을까봐서요?”
“그럴 수 있을 리가.”
“또 모르죠. 지금도 읽고 있을지.”
“헛수고다.”
마틴이 농담이 아닌 농담을 던지는 건 브루스와 약간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천적’의 앞에서 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발언은 농담이 아니라 협박이 되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날엔 인심이라도 써주지 그래요? 오늘도 앓는 소리를 하고 있던데.”
“하는 걸 보고 생각해보지.”
제자에게 수련 시간을 알리기 위해 떠나는 티엔의 어깨너머로 덧붙인 말에 그는 하나마나 한 소리, 그러니까 수련의 성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방침에 마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엾은 그의 제자는 오늘도 여전히 고통 받게 되리라.
그렇게 마틴 챌피와 헤어져 제자를 찾던 티엔은 문득 자신이 축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생일 축하를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라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이하랑.”
“아- 간다고, 가!”
티엔이 채 수련 시간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제자는 곧장 방에서 튀어나왔다. 하랑이 전에 밝히기로 그 단어에는 신경쇠약이 생길 지경이라나, 이유야 어찌되었건 스승으로서는 꽤 뿌듯한 일이다.
“부적은 제대로 준비해뒀겠지? 오늘은 자령의 수행이다.”
“그제부터 귀가 따갑게 말했는데 까먹을 리가 있나. 아주 손이 아작 나게 썼구만! 그런데 사부, 오늘 생일이라며?”
암만 투덜거려도 제 능력이 그런 것은 티엔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꺼내는 생일 이야기에 티엔은 또다시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건 어디서 들은 거냐. 마틴은 네게 들어 알고 있다더군.”
“어? 생일? 그야 곰 할배가 말해줬지. 아마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을걸.”
과연. 브루스라면 서류를 통해 티엔의 생일을 알아둘 수 있다. 기공사는 오늘 그와 마주치게 된다면 매우 우렁찬 축하인사를 들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거 뇌물 아니니까 받아두쇼. 들어놓고 암것도 안 주는 건 뭐 해서.”
그렇게 말하며 하랑이 내민 것은 찻잎이 들어있는 작은 금속제 통이었다. 그건 소년이 오전부터 마틴을 찾아갔던 이유 중 하나로, 재단의 후원품 중에서 선물로 쓸 만한 물건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쨌거나 거창한 건 받지도 않을 테고, 제 생일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던 사람에게 주는 선물인지라 하랑은 그 중에서도 소소하게 보이는 걸 골라잡았다.
축하에 이은 선물. 수련밖에 모르고 살았던 사람에게는 낯선 일의 연속이었다.
“이럴 필요까진 없다만……”
“그래서, 생일날인데 뭐 맛있는 거 안 먹어? 난 저번에 할배가 사준 소고기가 맛있던 데 말이오.”
고맙다는 말은 또 기회를 놓쳐버렸다. 작은 선물이 그의 손에 전해지자마자 눈을 빛내는 제자에게 티엔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주지 않는다.
“흠. 뇌물이 아니라고는 네 입으로 분명 말한 것 같다만.”
“어허, 같이 먹을 거면 뇌물이 아닙니다, 사부. 오늘 수련도 열심히 할 거라고!”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냐.”
수련 장소인 공터를 향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티격대며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두 사람과 마주치는 후원자가 티엔에게 말을 걸어온다.
“티엔 씨, 오늘이 생일이라면서요?”
티엔은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었다.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날이다. 이 묘한 기분은 아마 이 하루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