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논커플링] 유희왕 전시리즈 합작글
유희왕 전시리즈 합작에 극장판 'The Dark Side Of Dimensions',
주제는 유대, 논커플링으로 참여했습니다.
멋진 합작 페이지는 이쪽-> http://bluerise.wixsite.com/yugiohwcollabo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작은 게임샵의 점원은 들뜬 얼굴로 문을 나서는 남자를 활짝 웃는 낯으로 배웅한다. 아마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그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점원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사랑받는 덱을 지켜보는 것은 명실공히 그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 중 하나다.
늦은 오후,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무토 유우기는 방금까지 덱에 넣을 카드를 고민하는 가게 단골손님과 한참이나 머리를 맞댔다. 새로운 카드며 전술이 등장할 때마다 덱을 보완하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는 유우기는 요청에 응하여 그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했고, 몇몇 카드로 후보를 좁힌 뒤 그들은 새로운 덱으로 조합할 수 있을 콤보와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응책을 의논했다.
자신이 그 덱을 쓴다면, 그리고 또 상대한다면. 소년의 머릿속에는 몇 번인가의 듀얼이 그려지고, 상담이 끝났을 무렵 유우기는 자신의 손에 카드가 들려있다는 착각마저 느끼고 있었다. 시간을 너무 빼앗았다며 사과를 건네는 남자에게 유우기는 도리어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로 화답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 이 감각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그 카드는 한 장으로 충분했을까…….”
턱을 괸 채 손님이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우기는 머릿속의 생각을 중얼거리고, 이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후의 고민은 덱의 주인이 다시 방문했을 때로 미뤄도 충분하다. 또 영혼과도 같은 타인의 덱에 과도한 간섭을 할 수는 없으니까.
겨우 여운을 털어내고 카운터 위에 늘어진 카드를 정리한 유우기는 침묵이 내려앉은 가게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혼자만이 남은 공간에서 그는 어쩐지 낯선 느낌을 받는다. 문득 바라본 창밖에는 길가에 늘어선 가로등이 점점이 빛나고, 가게를 찾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전보다 이른 시각에 끊겨버렸다. 계절을 모르는 게임의 세계 한가운데에서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가게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된 유우기는 그동안 키가 조금 자랐고, 게임 지식에 더욱 해박해졌으며, 이전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어른스러워졌다는 감상을 듣곤 한다. 왜냐는 물음에 명확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기에 유우기는 그저 자신의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최근 유우기의 하루하루는 조금 단조롭게 느껴질 만큼 규칙적이었다. 가게를 열고, 손님들을 응대하며 물건을 팔고, 가게를 닫고, 일을 끝마친 뒤에는 잡지나 인터넷 등을 통해 새로운 게임 소식을 물색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마지막 것으로 아무리 작은 샵이라고 해도 업계의 정보가 느릴 수는 없는데다 유우기가 지금 가진 목표를 위해서는 게임에 관한 그 어떤 종류의 이야기라도 소중했다. 기존의 게임을 즐겨왔던 지금까지와 달리, 직접 게임을 제작해 독일의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바로 그 목표.
지금은 아득하게 보이는 그 꿈을 유우기는 단 한 순간도 접거나 포기하지 않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퍼즐을 8년간이나 맞춰왔던 유우기다. 인내에는 언제나 익숙했고 성실 또한 그의 것이었다. 단, 오늘 밤 그는 어쩔 수 없이 게임의 구상을 잠시 미뤄두어야 할 것이다.
“보자, 다이스월드는 새로 꺼내고. 리스키싸이클은 잘 보이는 곳으로 위치를 바꿔볼까?”
유우기가 한적한 시간을 틈타 진열장을 정돈하고 있던 그때였다. 그가 자신의 한 아름에 겨우 들어오는 박스를 들어 옮기려던 그 순간 가게 입구에 매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리며 고여 있던 적막을 흩뜨려놓았다. 종소리를 타고 새어 들어온 바깥의 냉기는 가볍게 유우기의 뺨을 스치고, 조금 늦게 방문한 손님일까 싶어 그가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곳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소년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 유우기─. 뭐야, 도와줄까?”
“모쿠바!”
세계적인 기업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부사장이자, 사장이 부재중인 현재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카이바 모쿠바. 아직 앳된 얼굴을 한 소년은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막 학생의 신분을 벗어난 유우기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다. 역시 그 카이바 세토의 형제라고 할까, 겉으로는 전혀 다른 인상의 두 사람이지만 역시 혈연을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뜻밖의 방문에 놀라면서도 유우기는 화색으로 소년을 맞이했다.
“어서와, 오랜만이네.”
“아- 말도 마. 방금까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곧장 다가와 유우기를 거들던 모쿠바는 회사의 일을 투덜거리고, 그 모습만은 영락없이 그 나이 대의 소년다웠다. 대체 그런 거대 기업의 사장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유우기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하나, 둘, 읏챠.”
뜻밖의 도움으로 한결 수월하게 박스를 옮긴 유우기는 손을 털며 방문자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방이나 이렇다 할 짐이 없는 걸 보니 가게 밖에 헬기라도 두고 있는 걸까, 약간의 편견이 섞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쿠바는 멀끔한 옷에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모쿠바.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슬슬 정리 중인데 차라도 마실래?”
“됐어, 그냥 지나는 길에 들린 거고……. 오, 너희도 이거 취급하는구나? 구하기 쉽진 않았을 텐데.”
모쿠바의 시선이 향한 선반에는 신작 보드게임이 놓여있다.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물건을 시험 삼아 주문해 직접 플레이해본 유우기의 감상은 확실한 수작. 특히나 제작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게임에서는 여러 고민이 느껴져 감탄하는 바였다. 그런 작품을 알아봐주는 상대에게 게임을 사랑하는 소년은 밝게 웃음 지었다.
“그야 좋은 게임은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말야.”
“역시 뭘 좀 안단 말이야. 우리 회사 직원들이 좀 보고 배웠으면 좋겠네.”
작은 의자를 끌어다 카운터 앞에 자리 잡은 모쿠바가 다시 한 번 투덜거린다.
“그러고 보니 새 테마파크를 세운다며? 뉴스에서 봤어.”
“흐흥, 이번 건 지금까지보다 엄청날 거야. 솔리드비전을 십분 활용해서 지금까진 없던 새로운 놀이공원을 만들 테니까. 완공되면 유우기 너한테 초대권 정도는 보내줄 테니 기대하라고!”
“하하, 고마워. 역시 카이바 코퍼레이션은 대단한걸.”
“당연하지. 게다가 이건 형이 남겨둔 구상안이 토대니까 절대 망쳐서 안 되지.”
기억을 더듬어 KC의 소식을 묻는 유우기에게 모쿠바는 차마 그가 언급하지 못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CEO 카이바 세토는, 현재 어떤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활동을 중단했다고 알려져 있다. 늘 중대한 사안들을 직접 발표하곤 했던 그가 이번 테마파크 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다른 여러 루머가 퍼지기도 했으나 그 어떤 추측도 카이바의 실제 행보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카이바는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을 향한 여행을 떠났노라고, 그 누가 쉽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뉴스나 신문으로만 소식을 접할 뿐이던 유우기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역시 모쿠바의 입을 통해서였다. 여러모로 믿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그 당사자가 카이바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모쿠바는 작은 희망을 걸고서 유우기가 ‘그날’ 이후 아템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미 완전히 명계에 속한 파라오의 영혼이 그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명계로 떠난 카이바는 아직도 동생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유우기 넌 어때?”
“응? 아, 응.”
잠시간 카이바의 생각으로 정신이 팔렸던 유우기는 모쿠바가 그걸 눈치 채지 못했길 바라며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았다.
“나야 대단할 것도 없지. 가게 일은 보람차고, 게임은 아직 여러모로 구상 단계고. 가끔은 친구들이 찾아오고……. 며칠 전엔 죠노우치가 왔었어. 지금은 어느 라면집에서 일하고 있다나봐.”
“하? 저번엔 뭐였더라, 짐 트레이너가 되려고 한다지 않았어?”
“으음-. 전에는 잠깐 동물원에서도 일했어. 이거다 싶은 일을 찾으려면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는 게 좋지 않겠냐, 라고. 죠노우치답다고 생각해.”
“그래, 그 녀석 답네. 무식하게 부딪히고 보는 점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쿠바는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죠노우치는 유우기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카이바 형제와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유우기가 굳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럼 듀얼은?”
“응?”
“이번 시 대회에도 네 이름은 없던데. 이젠 듀얼은 하지 않는 거야?”
큰 규모의 듀얼 대회에는 대개 KC가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모쿠바가 유우기의 대회 참여 여부를 알고 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유우기의 대답은 단호했다.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유우기의 추억과 유대가 담겨있는 듀얼을 그가 그만둘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래도─ 지금은 내 게임을 생각하는 데 집중하고 싶거든. 그런데 덱을 만지고 듀얼을 하다 보면 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버리니까. 덱 정비는 꾸준히 하고 있지만 말이야.”
오늘도 그는 가게를 접고 나면 자신의 덱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방금까지의 상담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고, 오늘 밤을 새서라도 정비를 끝마치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오늘의 게임 구상은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거 다행이네. 네가 듀얼을 그만뒀다고 하면 형이 가만있지 않을걸. 뭐, 그것도 이 차원에 돌아온 다음의 얘기지만…….”
형의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흐리는 모쿠바에게, 망설이던 유우기는 조심스러운 위로의 말을 꺼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모쿠바. 그 카이바잖아?”
“누가 걱정한다고 그래?”
예상외의 반문에 놀란 유우기에게 모쿠바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야, 유우기. 지금까지 내가 침울해 할까봐 걱정이라도 한 거야?”
모쿠바는 의자에서 내려와 유우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아. 지금쯤 그간 밀린 듀얼이라도 하고 있는 거라고. 미안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형은 이기고 돌아올 거야.”
그 확신의 말에 유우기는 아템이 올 거라 굳게 믿고 있던 카이바의 모습을 떠올렸다. 역시 그들은 여러모로 닮아있는 형제였다.
“오히려 지금은 좀 곤란해. 형이 오기 전에 깜짝 놀랄 일 정도는 하나 만들어둬야 하니까. 유우기 너도 마찬가지야, 우리 KC에서 투자할 만큼 괜찮은 걸 만들어보라고! 넌 우리 형이 인정한 듀얼리스트잖아?”
“하하. 쉽지는 않겠는걸. 너나 나나.”
듀얼과는 관계가 없지만,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유우기는 묘한 동질감을 느껴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모쿠바의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을 들여다본 모쿠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서인 이소노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이래서야 누가 사장인지……. 형이 없다고 다들 너무 빠졌다니까. 또 귀찮은 일일 테니까 난 이만. 건강하라고, 유우기.”
“응. 응원할게, 모쿠바. 너도 분명 잘 해낼 거야. 카이바가 널 믿고 맡겼으니까.”
“그야 당연하지.”
간단한 작별. KC의 작은 부사장이 손인사와 함께 문을 나서고, 가게는 다시 조용해졌다. 유우기도 이제는 다시 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듀얼로 이어졌던 인연들 모두가 서로 조금씩 이어진 채로 앞으로 나가고 있다.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 유우기는 작게 숨을 들이쉬고, 하루의 마감과 내일의 준비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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