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티엔마틴] 엇갈림
름구님과의 연성교환입니다*'ㅅ')
각자 '이제 우리 그만 비참해지기로 해요'를 연성의 첫머리/가장 끝에 놓기.
저는 앞을 맡았습니다!
기한을 넘겨.... 매우.... 죄송합니다.......
름구님의 멋진 연성은 여기↓
http://andrprnfma.postype.com/post/240690/
“이제 우리 그만 비참해지기로 해요.”
그 말이 떨어진 직후 마틴은 그의 의문이 옆얼굴에 닿아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생각해 미소 지으며 꺼낼 수 있던 말이었다. 역시 이 사람에게는 더 확실한 언어가 나았을 거라는 짧은 감상. 마틴은 그렇게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곧장 이어져야 할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꽤 길었던 관계를 끝낼 때가 왔노라고, 하지만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될 수는 있을 거라고.
방 안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시계 초침이 똑딱이는 소리와 느릿한 자신의 숨소리만이 마틴의 귓가를 맴돌고, 우중충하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드리우는 빛은 크게 나있는 유리창을 통해 작은 공간을 시리게 비춘다. 책상 위에 약간 어지럽게 놓여있는 서류며 필기구들은 마틴이 앉은 책상 위로 제멋대로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언제라도 누군가 찾아와 그들을 방해할 수 있는 마틴의 사무실. 어트랙티브는 계산적인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들을 끝까지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당신이 정말 원했던 건가?”
과연, 티엔은 마틴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묻지는 않았다.
“숨이 막히잖아요. 당신도, 저도.”
“……그래. 그랬었지.”
숨이 막힌다는 표현을 먼저 사용한 건 티엔이었다. 그때 그는 조용히 화를 내고 있었고 다소 격한 표현이었을지언정 그 말에 거짓은 없었을 터였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별로 달라질 것도 없겠군.”
무표정과 검은 눈동자의 시선이 마틴에게로 공허하게 내려앉았다. 그 시선을 피해 의미 없이 책상 위를 훑던 마틴의 눈길은 어느 서류철의 제목 위에서 멈춰 선다. ‘그랑플람 재단 아시아 지부: 동양 능력자 발굴의 진척 상황 보고. ─티엔 정.’
“이건 돌려주는 게 낫겠나?”
착잡해졌던 표정을 수습한 마틴이 올려다 본 티엔의 손 안에는 그들의 감정을 물질로 표현한 몇 안 되는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건 마틴이 수십 번 상상했던 지금 이 순간 중에서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당신이 원한다면요.”
마틴은 탐탁지 않았던 대답을 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었고, 티엔은 말없이 다가와 매끈하게 빛나는 반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정작 그의 손에 끼워진 일이 드물었던 작은 상징물은 마틴이 그걸 그에게 건넸던 날과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영원할 거라느니, 변하지 않겠다는 둥의 의미 없는 맹세를 해본 기억은 없었다. 그럼에도 일종의 약속이었던 무언가가 자신의 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마틴을 묘한 기분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감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별을 고한 이는 그를 떠나려 방을 나서는 이를 불러 세워야했던 것이다.
“이걸로 끝이에요?”
이렇게 남은 걸 되돌려주는 것 외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마틴을 돌아보는 티엔의 눈은 여전히 예의 그 공허한 빛을 띠고 있었다.
“가볼 시간이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도피는 티엔 정이라는 사람답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해왔던 일들의 전부는 그들을 헝클어뜨리는 과정의 일부였으므로 이제는 무엇이 일어나도 놀랄 것은 없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꺼내려던 시도에 무색하게도, 마틴은 티엔이 뒤돌아 떠나기 직전의 굳은 표정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신화 속 네메아의 사자는 어떤 무기에도 상처 입지 않았으나 결국 영웅의 손에 목 졸려 죽어버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사자였다. 그는 칼날이 들지 못할 거칠고 뻣뻣한 털가죽을, 나는 칼날을 능히 빗겨낼 교활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그가 나의, 내가 그의 목을 조르기 전까지는.
다음날 그들은 짧은 통화를 나눴다. 티엔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서로의 거처에 남은 물건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논의, 또는 통보였고 그걸로 끝이었다. 연인들 사이에 으레 있다고 하는 미련의 흐느낌도, 인상적인 작별인사조차도 없었다.
잘 지내요. 억지로 짜낸 마틴의 인사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로 간만에 보내는 혼자만의 밤. 같은 침대를 쓰지 않는 밤에도 두 사람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를 떠올릴 때면 마틴은 어디론가 고개를 파묻고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비참함. 내가 나의 비참에 대해 그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
간혹 찾아오던 우울은 언제부터인가 그와 함께 있을 때 더욱 심해지곤 했다. 정신계 능력을 가진 사이퍼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하던가. 마음껏 남의 속을 들여다보곤 비웃고 동정한 뒤에야 가라앉곤 하던 우울. 하지만 이 안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나는 그렇게 해낼 수 없었다.
나를 안심시키던 무지(無知)가 나를 괴롭히는 순간에, 상대의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불안이 차올라 작은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다. 그 상처가 썩고 곪은 뒤에는 또다시 새로운 상처가 새겨지고, 다시, 또다시, 사랑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여겨질 정도로.
당시에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지만 아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의 상처는 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상처를 내보이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웃는 얼굴을, 그리고 적당히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정도의 슬픔을 사랑했고 나는 언제나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을 때면 혼자 틀어박히거나, 일에 집중하거나,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걸로 자신을 위로하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티엔에게 나의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관계는 더 일찍 끝나게 되었을 테지만, 어쨌거나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으니 우스운 일이다.
“미안하다. 위로 같은 건 익숙하지 못하군.”
잠자코 듣고 있던 그는 뜻밖의 사과를 건넸다. 그러나 무뚝뚝한 그에게서 받는 서툰 위안의 말은 기대 이상의 것이어서─ 심지어 그는 나를 이해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불행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마저 가지게 되었다. 글쎄. 수많은 감정들과 그 끝을 읽어온 마인드리더에게도 희망 정도는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이어진 긴 시간은 최악과 안도의 반복이었다.
나 자신을 담보로 쥐고서 누군가를 흔들어대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복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감정과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은 그로 하여금 필요 이상으로 나의 기분을 살피며 입을 다물게 했다. ‘가끔은 죽어버리고 싶어요.’ 나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다.
우리 둘 중 누군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분명 나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식의 동정은 필요 없다고, 그의 시선이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고 외칠 수 없었다.
그날의 나는 그와의 관계에 유달리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내뱉는 신음과 본능적인 몸의 반응, 그게 전부였다. 바닥끝까지 가라앉아있던 내게는 모든 것이 우스웠다. 잘도 이런 내게 욕정하는 남성이나 그 아래에서 쾌락을 연기하는 나의 모습까지.
비웃음을 알았던 걸까, 늘 있던 진득한 후희 따위가 이날 밤의 우리에게는 없었다. 하긴. 마음은 몰라도 몸에 관해서만은 정통한 그가 나의 성의 없는 반응을 모를 리가 없다.
“의사표현은 확실히 해라.”
말없이 뒤처리를 끝낸 그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네, 그렇게 하죠. 미안해요. 대답은 내 머릿속에서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로 우리는 양측의 확실한 동의 없이는 육체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날 이후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그 이전부터 우리는 낮은 속삭임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상기시켰다. 곧 죽더라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달콤한 고백이 아니라 서로의 길이 갈린다면 가차 없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들. 우리는 그런 식의 연애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자신의 시간, 자신의 공간, 자신의 결정 같은 것들을 어그러뜨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만남이란 꽤나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삶 속에 아주 약간의 부드러운 이음매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입장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존재가 짐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티엔이 점점 초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나를 떠나지 못했던 건,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가볍게 여겼던 애착이라는 감정이나, 동정, 또는 어떤 종류의 관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함께 비참해지느니 차라리 혼자 견디겠다고. 그게 나의 결론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이틀이, 그리고 또 사흘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뜻밖에도 마틴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어려운 업무와 협상들을 훌륭하게 수행했고, 옛 후원자의 신뢰를 얻어냄으로써 재단의 영광을 되찾는 데에 이바지했다. 심지어 그는 전보다 더 밝은 얼굴로 웃을 수 있었다.
누구 머릿속이라도 엿보고 있는 거 아냐? 기분 나쁘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이전의 그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답답함과 죄책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뒤의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밝은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기시감에 의해 마틴은 과거의 우울이 고스란히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붙고 있음을 알았다. 평화가 지속되리라는 믿음은 이번으로 처음이 아니었기에.
“챌피씨, 이번 회의에 티엔 정씨가 불참했는데 혹시 왜인지 아세요?”
당연하게도 마인드리더의 평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전혀 관련이 없어야 할 이에게 티엔의 행방을 넌지시 묻는 그녀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사이를 눈치 채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해 내버려두었던 씨앗이 자라나 발목을 잡는 순간 마틴은 약간의 짜증과 낭패, 그리고 옅은 의문을 느꼈다.
“글쎄요. 저도 별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런가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성의 의혹은 매력적인 능력자의 작은 암시에 의해 그게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깨끗이 지워졌으나 마틴의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였다. 그토록 가라앉았던 날들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그르치는 적이 없던 이었던 것이다.
“그게 전달할 사항인 거죠? 제가 맡아서 전해드릴게요.”
“네? 아,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지만……”
“마침 저도 볼일이 있어서요.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뜻밖의 용기는 마틴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설령 그 용기의 또다른 이름이 비열함일지라도.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면, 티엔 정은 누군가의 연인으로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와 마틴 챌피에 대해 논하자면 그들 사이에는 티엔이 끔찍이 미워하는 부조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선을 긋지 못한 것이 화근으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패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첫 울음이 터져 나왔을 때 티엔이 느꼈던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아마 잘못은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아는 마틴과 달리 티엔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서툴렀고 그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끝을 생각했다. 어긋난 톱니바퀴가 맞물려야 하는 이유를 그는 생각해낼 수 없었으므로. 상대가 소중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의 고장 난 감정조차도 마틴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견딜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인이 털어놓은 괴로움에 티엔의 결심은 무너졌다. 마틴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와 닮아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먹힐 것만 같은 두려움. 자신의 잘못만이 아니었다는 깨달음과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은 기시감에 티엔은 그를 두고 떠나갈 수 없었다.
적어도, 아주 적어도 그가 상대를 보듬을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동안에는.
“안녕하세요.”
뜻밖의 방문자는 너무도 평범한 노크와 함께 찾아왔다. 가능하면 다시 보기를 원치 않았던 금발, 단정한 옷차림, 옅은 주근깨의 사내. 그의 눈빛은 여전히 티엔의 시선과 비껴나간 곳을 향해 있었다.
“음.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마틴이 꺼낸 말은 티엔에게 아직 살아있는지, 혹은 미치지 않았는지를 묻는 뜻으로 들렸고 그는 그 물음에 긍정을 표했다.
“그래. 아직은 그렇지.”
상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쥐었다 펴보는 검은 손에서는 아직 떨림이 제대로 멎지 않았다. 매슥거리던 속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몸의 구석구석이 제 상태를 되찾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굳은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한 티엔의 노력은 그로 하여금 불쾌함을 가장하게 했다. 가시 돋친 물음에 마틴의 입에서는 더욱 사무적인 태도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회의 불참 건으로 부탁을 받아서요. 그리고 그때 논의된 사항으로……”
짧은 점멸. 불길한 회색빛과 부스러지는 환상이 티엔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이런 자리를 골라서. 거의 분노를 느끼는 그는 아프도록 주먹을 쥔 채로 시야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티엔? ……티엔씨.”
“그 일에 대해서는 이미 해명을 했다. 볼일은 그게 다인가?”
이를 악물고 되묻는 기공사의 싸늘한 태도에 마틴은 그 이상의 대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마틴은 짧은 시간 동안 작별의 인사에 대해 고민했다. 어떻게 봐도 자신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에게 다시 보자는 말은 너무도 무책임하게 들렸고 긴 작별을 이야기하기엔 그들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마웠어요.”
이전에 티엔은 때로 마틴을 초대한 자리에서 이국의 요리를 만들곤 했다. 본인이 고향에서 먹던 음식이나, 하랑의 고향인 조선 땅의 음식까지. 사실 마틴은 그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지만 어느 쪽도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언젠가부터인가 그는 동양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마틴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음식의 유래나, 맛을 내는 과정, 그걸 먹는 지방의 사람들의 이야기 따위를 알려주곤 했다. 그건 정말로 티엔 정이라는 사람답지 않은 일이어서, 마틴은 그의 말을 흥미롭게 듣는 한편 이런 식의 특별한 쓸모가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그의 머릿속을 상상해보곤 했다.
사실 그에게는 전하고 싶은 말이 훨씬 더 많은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들려줄 만큼 자신이 그에게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마틴은 때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오래 전에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티엔은 그의 말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사람들의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알게 되는 건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티엔 자신이 놓쳐버린 것들을 상기시켜주는 말들. 때로 마틴은 짓궂게도 티엔을 향하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알리기도 했다.
그것도, ‘숨이 막히게’ 된 후로는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불안에 사로잡힌 이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괴로워하고 있는 연인에게 자신의 짐까지 지울 수 없다는 핑계와 자신의 실패를 드러낸다는 부담감.
연인에게는 자신 외에도 많은 인연과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티엔은 제대로 된 버팀목이 될 수 없는 자신을 그의 곁에 두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함께 비참해지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선택은 옳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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