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피해자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듯한 외상이 있었고, 이른 새벽 인근 주민에게 발견되었다. 라는 짤막한 보도로는 미처 알 수 없는 사건의 진상은 참혹했다.
뼈와 내장이 다 드러나도록 파 먹힌 시신과 그 곁에 널브러진 살점, 그리고 사방에 흩뿌려져 피해자의 격렬한 저항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핏자국은 비위가 특히나 좋은 이들에게도 구역질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시신의 안면은 거의 짓뭉개지다시피 하여 신원을 특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가장 끔찍하고도 기묘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짐승의 잇자국이 선명한 살점들은 어느 것 하나 실종되지 않고 시신의 주변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부검의는 그것들을 꿰어 맞추어 온전한 사람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 사건은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으나 결정적인 몇 가지 특징을 공유했다.
첫 째, 피해자의 사인은 명백히 동물의 턱에 의한 것이었다. 둘 째, 시신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으깨어졌음에도 사라진 잔해는 없다. 하지만 이번 피해자에게 남아있는 자국은 육지에 존재하는 맹수의 것 이라기엔 너무도 거대했다. 상체의 머리와 어깨를 포함한 부위가 '한 입에' 뜯겨나간 것이나, 시신 조각 군데군데에 남은 이빨의 흔적을 볼 때 그 짐승은 도저히 런던 거리 한복판에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됐다.
게다가 이번 피해자는 말 그대로 뼈째로 씹어 먹혀 있었다. 허연 뼈와 검붉은 살이 뒤엉켜 쏟아져 있는 광경은 전보다 더한 것을 볼 리 없다 여겼던 이들의 뇌리를 다시 한 번 헤집고 뒤 쑤셔 놓았다.
제자가 실종된 지 보름째 되는 날, 의심 가는 사건을 닥치는 대로 조사하고 다니던 티엔 정은 그 실마리를 가장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손에 넣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나타나 시민을 도살하고 사라진 짐승들. 실체가 없는 양 물어뜯은 먹잇감을 고스란히 남겨두기까지 하여 사건의 실상을 아는 이들은 헬하운드의 소행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잔혹한 범죄들은 착실히 통제되어 보도되고 있었지만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는 괴담을 막아낼 수는 없었고, 결국 뒷돈과 모종의 거래, 그리고 탐문을 통해 티엔은 이것이 자신의 제자의 소행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그의 제자는 능력을 이용해 적어도 두 건의 살인을 일으켰고, 심지어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거나 사주를 받은 것이라면 이토록 참혹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아는 하랑은 결코 이런 일을 벌일 리 없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가 알아낸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티엔은 하랑을 찾아내야만 했다. 어째서 자신을 떠났는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대체 어째서, 자신에게 아무런 말조차 남기지 않았던 것인지.
티엔이 재단에서의 탈퇴 의지를 밝혔을 때 누군가는 제자의 실종 건에 대한 위로의 말을 보냈고, 누군가는 성급한 결정이라 그를 말렸으며, 또 누군가는 티엔의 또 다른 실패에 조소를 보냈다. 티엔을 재단으로 인도했던 브루스 보이틀러는 앞의 두 부류에 속했으나, 티엔의 확고한 뜻을 확인하고는 더 많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마틴 챌피, 그와 사이가 좋지 않던 마인드리더만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티엔 정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누구보다 환영할 줄 알았던 마틴의 얼굴은 어두웠고, 간단한 작별의 말조차 꺼내지 않던 그는 간소한 짐을 챙겨 떠나고 있던 티엔을 불러 세웠다.
“이제 와서 어쩔 셈이죠? 멀리 도망이라도 보내려고?”
그가 일그러진 얼굴로 내뱉은 말의 뜻은 간단했다. 살인자가 된 제자를 만나서,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것인지. 하지만 티엔은 그런 질문보다도 그 전제가 되는 사실에 정신이 쏠렸고, 그의 목소리에는 조용한 분노가 실렸다.
“알고 있었나? ……언제부터? 어째서 내게 알리지 않았지?”
티엔이 지금껏 얼마나 필사적으로 제자의 행방을 쫓고 있었는지, 재단 전체의 상황을 파악하는 마틴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단순히 제자를 걱정하는 스승 그 이상의 의미로 많은 것을 내팽개치고 하랑의 흔적을 뒤졌다. 하지만 죽일 듯 노려보는 무인 앞에서도 마틴은 괴로운 얼굴을 할 뿐, 두려움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지금 그런 게 의미가 있긴 한가요?”
물론 지금 와서 이런 사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 마인드리더는 티엔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티엔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양손을 굳게 쥐었고, 재단을 떠나는 마지막 발걸음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하랑은 어디에 있지?”
“몰라요. 제게 근황……을 한 번 알린 게 다였으니까. 사람을 죽였다는 걸요. 이틀 전에, 신문기사와 짧은 메모였고 그 이상은 저도 알지 못해요.”
그 대답의 한 구절 한 구절은 티엔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파고 들었다. 자신에게는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던 하랑이, 어째서 이 자에게는. 그리고 이어진 마틴의 다음 한 마디는 충격에 빠져있던 티엔에게 더욱 선명하게 파고 들었다.
“조심해요. 그건 이미 당신이 알던 하랑이 아니에요.”
─────────
티엔은 이전까지 사고나 납치 등의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하랑을 찾았지만 살인사건이 하랑의 소행이라고 확신한 뒤로는 제자가 무사하며, 남들의 눈을 피해 다닐 거라는 전제로 수색. 하지만 결국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가운데 하랑이가 연락을 시도한 유일한 사람인듯한 마틴이 관건이라고 인정함.
그 뒤로는 멀리서 마틴을 미행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 그러면서도 헛수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괴로워했는데 어느 날 밤 마틴이 귀가하던 도중에 무언가에게 습격을 당했다. 티엔이 달려갔을 때 그곳엔 백발에 양 눈이 붉은 하랑이가 있었고 낌새를 챈 하랑이는 도주. 쫓아가지만 결국엔 놓쳤다.
티엔은 마틴에게 돌아가서 무슨 말을 들었냐고 다그치는데 마틴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다 당신 탓이라면서 눈물까지 보이고 가버리려 함. 그러는 걸 티엔이 또 붙잡으니까 ‘당신 제자가 절 좋아한대요. 그래서 사람도 죽였대요’라고 쏘아붙이고 티엔은 충격. 둘 다 제정신은 아닌 상태로 헤어짐.
그런데 얼마 후 동물로 변신이 가능한 능력자인 브루스가 살인 건으로 경찰에 소환되고, 별 일 아닐 거라면서 조사에 응했지만 뭐라고 결론이 나기 전에 살해당했다. 전만큼 처참하진 않지만 짐승의 흔적으로 보아 사건의 진범이 한 짓인 게 확실.
티엔이 이 일을 알고서 마틴한테 찾아가는데 피폐한 모습. 이번에도 당신 탓이라고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티엔은 이번 일을 따로 조사한 게 있냐고, 설마 브루스의 일인데 가만히 있었던 거냐고 몰아붙이고 마틴은 자기가 찾은 것들을 면전에 던지면서 그 제자와 함께 다시는 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폭언.
결국 바뀐 외형이나 마틴이 조사한 내용까지 여러 단서로 하랑을 찾아내게 되는데, 호랑이영에 안 좋은 방향으로 씌어서 인격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티엔은 지금까지의 일들의 이유를 물었고, 아직도 모르겠냐고, 자신은 마틴을 좋아하는데 마틴은 티엔만 보고 있어서 죽을 것 같았다는 대답. 그런데 티엔은 또 자길 좋아하니까 괴롭히고 싶었다고. 고뇌하던 와중에 반쯤 사고로 영에 씌어버렸고 그대로 뛰쳐나오게 된 것. 겸사겸사 마틴에게 추파를 던졌던 인간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저번엔 드디어 좋은 시간을 가져보나 했더니 티엔에게 방해 당함.
씌어있다지만 이게 결국엔 진짜 바라던 거였다고, 난 당신한테 돌아갈 생각도 없고 사랑하는 제자를 죽이기라도 할 거냐고 웃는데 티엔은 이런 모습을 볼 바에는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선언.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인데 하랑이 힘이 강해져 있어서 좀 고전하게 된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 형 앞에서 사부를 겁탈해볼까? 같은 소리까지 듣다가 결국엔 제압……할 뻔 하다가 티엔이 한 순간 망설여서 일이 꼬이고, 결국 하랑이는 어디선가 추락해서 치명상. 티엔이 가까이 갔을 때 하랑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사부 왜 어째서 나 아파 살려줘, 같은 말을 하다가 죽음.
다음날 티엔은 자기가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수하고, 증거로는 자기 능력으로 하랑이의 영들을 모방해서 물어뜯은 시체. 조금 흔적이 다르지만 자수도 했겠다 진범으로 보도되고 사형 판결.
마틴이 나서서 티엔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마지막 시체는 티엔이 직접 손을 댄 게 맞고, 마틴 본인이 위험한 능력자인데다 옛 동료여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면회 등도 불가. 사형은 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