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는 아이에게 건넸던 다정한 인사는 짜증 섞인 대답에 묻혀버렸다. 그러고 보면 마리나는 어젯밤 잠들기 전 악몽을 자주 꾼다고 말했던 것 같다. 가엾은 아이.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이 애는 마음 놓고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그거 유감이네.”
“이건 다 네 탓인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내 차분한 말씨가 문제였던 걸까,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표정을 한껏 구긴 마리나는 달랑달랑한 털방울이 달린 수면모자를 벗어들곤 내가 앉아 있는 횃대를 향해 있는 힘껏 던져왔다. 아직 날갯짓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고개를 한껏 움츠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모자는 그런 내 머리깃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침실 한 구석에 처량하게 놓여있던 커다란 곰인형은 나보다 운이 좋지 못했다. 털방울과 뒤얽혀 픽 쓰러져버리는 그 덩치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 몸의 깃털을 세워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안 돼, 마리나! 사람에게 모자를 던지는 건 나쁜 짓이야.”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내게 마리나는 더 큰 목소리로 악을 쓴다.
“시끄러워, 넌 사람도 아니잖아!”
“오, 그렇네. 내 말은, 그러니까 살아있는 것들한테 말이야! 방금은 정말로 위험했다고.”
내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은 채, 아이는 던질만한 다른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커다란 침대 위에서 마리나의 작은 손에 잡히는 거라곤 무겁고 푹신한 베개와 솜이불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아, 정말 짜증나.”
투덜거리며 이불 사이를 빠져나온 마리나는 부스스하게 일어나있는 초콜릿 빛깔 머리칼을 탁자에 놓여있던 노란 끈으로 아무렇게나 붙잡아 매었다. 제멋대로 뒤엉키는 곱슬머리가 안타깝지만 내 날개로 머리를 빗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발터, 내 톱이 어디 있지?”
꼬마 마녀의 질문은 내게 어제의 일을 상기시켰다. 마리나는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톱을 다루는 솜씨가 놀라울 만큼 좋은 아이였다.
“아마 1층 계단 앞에 있을 거야. 밟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하려고 했지. 그런데 톱은 왜?”
“네 머리를 바깥 울타리에 걸어둘 거야. 그렇게 하면 나를 방해하는 멍청이가 조금은 줄어들겠지.”
아하. 하긴 그런 장식이 있다면 나라도 이곳에 발을 들이기 전에 한 번쯤 망설였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다.
“마리나, 내게 쓰기엔 그 톱이 너무 크지 않겠어?”
방을 나서려던 작은 숙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내가 작은 머리통을 갸웃하며 던진 질문은 어떤 이유에선지 가라앉았던 마리나의 심기를 다시 한 번 건드린 것 같았다.
“아니, 바보야. 네가 어제까지 쓰던 인간 머리 말이야!”
“아, 저런. 그걸 잊고 있었지 뭐야.”
아이는 현관문 앞, 아마도 곰가죽 카펫 위에 그대로 쓰러져 있을 나의 옛 몸뚱이를 말하고 있었다.